한복입고 다녀온 광화문 (복원, 해치상, 찬반 논쟁)

광화문 월대 복원

광화문 월대가 복원 완공 소식을 듣고 저희 부부도 한복까지 빌려입고 바로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솔직히 '그냥 돌계단 하나 생긴 거 아닌가'라고 가볍게 생각했다가 그런 생각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광화문 앞에서 한참 동안 구경을 했었습니다. 새롭게 변한 모습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을 되 찾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요. 설레는 마음으로 다녀온 현장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100년 만에 되찾은 역사, 월대 복원 현장

월대는 단순히 '계단'이나 '마당'이 아니라, 국가 의례와 왕-백성 간 소통을 위한 공식적인 공간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일반 건축 구조물과는 구별됩니다.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형식은 광화문 월대가 조선 궁궐 중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 월대를 복원하기 위해서 남아있는 그림이나 영상 자료를 찾아서 겨우 고증을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직접 봤을 때 발굴 흔적과 복원된 경계 부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역사가 문자 그대로 땅 밑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습니다. 어도의 폭이 7m에 달한다는 것도 확인되었는데, 이곳에서 실제로 의례가 열렸을 장면이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부부가 갔을때 마침 수문장의 교대의식을 하고, 1시간 뒤에 광화문 파수의식을 하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정말 멋있다는 말밖에 안나왔습니다. 

구리시에서 보관 중이던 원래 난간석 일부를 기증받고, 나머지는 비슷한 모양으로 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직접 보면 색깔 차이로 어느 부분이 원본이고 어느 부분이 복원품인지 눈으로도 구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게 오히려 솔직한 복원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재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억지로 균일하게 맞추는 것보다, 어디까지가 원형이고 어디서부터 복원인지 드러내는 방식이 역사에 더 정직하니까요.

해치상과 광화문 현판의 색깔이 바뀌었어요

저희 부부가 현장에서 봤을 때 해치상이 월대와 함께 배치되니 훨씬 자연스러운 구도가 완성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선시대에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장소였다는데 실제로 봤을때 왕이 직접 백성들의 고충과 힘든 부분을 살폈다는 것에 대해서 애민정신을 기본 바탕에 두고 통치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우리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훼손당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웠고 솔직히 이런 월대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몰랐는데 복원을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임금도 혼자 모든 걸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공정의 상징을 문 앞에 세운 게 아닐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꽤 세련된 발상입니다. 아내와 함께 해치상 앞에서 "판관 역할이라도 해줘"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그게 묘하게 조선시대 분위기와 어울려서 웃음이 났습니다. 이런 사극놀이를 통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월대 어도 앞에는 서수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서수상 2점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했던 작품으로, 유족 측이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사적 컬렉션이 공공 문화재로 귀환한 사례라는 점에서 무척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복원과 함께 광화문 현판도 새롭게 교체되었습니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교체인데, 고종 때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글씨를 검은 바탕에 금빛 글자로 새긴 현판입니다. 광화문이라는 이름 자체가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입니다. 당초 문화재청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제작할 계획이었는데,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1893년 사진과 경복궁 중건 기록인 영건일기에서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근거가 나오면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글씨 논란이 꽤 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역사 기록이 이겼다고 봅니다.

월대 복원을 둘러싼 찬반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월대 복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히 "잘됐다"로 모아지지 않습니다.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긍정하는 시각과 현실적 부작용을 지적하는 시각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저는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월대를 복원해서 차가 막힌다고 하고, 혹은 제대로된 복원이 아니라는 말도 있는데, 직접 광화문에 가보니 도로가 휘어진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를 복원하는 작업인 만큼  교통 흐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월대가 왕과 백성의 소통 공간이었다는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고, 오히려 월대가 생기면서 광화문 밖 행사 기록이 줄어들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그 넓은 공간을 보면서 "여기서 정말 백성들이 왕을 만났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습니다. 역사 해석이란 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교통 문제를 두고는 월대 때문에 사고가 늘었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교통 신호 체계와 도로 설계를 조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를 없애는 게 답이 되기는 어렵고, 도시 설계가 거기에 맞춰가는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반면 밤에 횡단보도 시야가 제한된다는 지적은 실제 현장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 이 점 만큼은 꼼꼼한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내국인 관광객도 많았지만 절반은 외국인 관광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 광화문 일대는 형형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습니다. 파란 눈과 금발의 외국인이 한복과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한복을 대여해서 입었는데, 한복을 입으면 광화문 입장이 무료라는 것도 작은 행복이었습니다. 

저는 도심 한복판에 이런 궁궐과 넓은 녹지공간, 그리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광화문은 월대 하나만 복원된 게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훈민정음 해설,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빗물의 양을 재는 측우기, 천체 관측 기구인 혼천의까지 조선의 과학과 역사가 한곳에 밀집해 있는 공간으로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좀 더 생생한 역사 교육이 될 것입니다. 복원 논란이 계속되더라도, 이 공간이 우리 역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찬반을 떠나 한 번쯤 직접 발로 밟아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과거로 가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 참고: https://www.tourtoctoc.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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