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단풍 (1위, 케이블카, 김밥)
가을만 되면 설악산이나 지리산 얘기가 제일 먼저 나오지만, 실제로 단풍 절정기에 주변 상권 매출이 가장 크게 뛰는 산은 따로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개인적으로 설악산을 더 좋아하지만 정읍의 내장산이 인기라고 합니다. 가을이 되면 그냥 "단풍 하면 설악산"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다녀온 지금은 왜 내장산인지 몸으로 이해합니다.
설악산을 제치고 1위가 된 산, 내장산의 단풍
KB국민카드가 전국 16개 단풍 명산 주변 상권의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단풍 절정기(2주간)에 이전 2주 대비 전체 평균 매출 증가율은 37%였습니다. 그런데 내장산 인근 상권은 그 수치가 무려 235%였습니다. 2위인 주왕산이 116%이니, 내장산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설악산은 47%, 지리산은 45% 수준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내장산의 수종구성에 있습니다. 수종이란 나무의 종류를 뜻하는데, 내장산에는 국내 자생 단풍나무 11종이 한 곳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단풍나무 한 종류만 있는 산과 달리 빨강, 주황, 노랑이 각각 다른 톤으로 층층이 물드는 광경은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제가 직접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봤을 때 고소공포증을 느낄 정도로 아찔한 높이였지만 숲속으로 더 들어갈수록 단풍색의 밀도가 생각보다 훨씬 짙어서 순간 탄성이 나왔습니다.
산림청이 당단풍나무를 기준으로 예측한 내장산의 단풍 절정 시기는 10월 말~11월 초입니다. 일본 친구에게 당단풍나무의 나뭇잎을 보여주면서 잎이 작은 것이 특징이고 색감이 더 선명하게 물드는 것이 특징이라고 아는 척을 좀 했습니다.
실제로 내장산은 11월 매출 비중이 연중 32%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절정기가 다른 산보다 조금 늦게 찾아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설악산 단풍이 지고 나서도 내장산에서는 충분히 가을을 즐길 수 있습니다(출처: 산림청).
케이블카 타고 올라간 단풍, 그리고 전라도 한정식
제가 내장산을 찾게 된 계기는 사실 꽤 특별했습니다. 일본에 사는 친구 부부가 가을에 한국을 찾아왔고, 저희 부부가 가이드를 맡게 됐습니다. 처음 만난 건 일본 여행 중 관광지에서 길을 물어보다 시작된 인연인데, 그게 벌써 몇 년째 이어져 서로의 나라를 오갈 때마다 꼭 연락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내장산을 고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등산을 좋아하지만, 일본 친구들에게 억지로 체력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장산 케이블카는 1979년 처음 운행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연자봉 중턱 전망대까지 운행 중입니다. 성인 기준 왕복 7,000원으로, 힘든 등산 없이도 산 위에서 단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접근성이 탁월합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300m 정도 걸으면 전망대가 나오고, 거기서 서래봉, 연지봉, 망해봉이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전에 들른 정읍 시내의 전라도 한정식 전문 음식점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참게장정식, 떡갈비정식, 한돈주물럭정식, 산채한정식 등 메뉴 구성이 꽤 폭넓었는데, 저는 일본 친구들에게 떡갈비정식과 참게장정식을 각각 주문해서 나눠 먹자고 권했습니다. 서로 다른 걸 시켜서 같이 먹으면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인당 25,000원 이상이었지만, 일본에서 받은 환대를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떡갈비의 고기향을 너무 좋아하는데 간장향과 불향의 조화로 인해서 떡갈비에 밥을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반찬이 나오는 순간 일본 친구의 표정이 굳었다가 곧 환해졌습니다. 일본은 보통 밥, 국, 반찬 두세 가지가 작은 그릇에 예쁘게 나오는 문화인데, 한정식 상에는 반찬이 수십 가지가 깔리니까요. 일본 친구가 어디서부터 젓가락을 대야 할지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일본어로 스고이 라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을 제가 설명해줬더니 그제야 빵 터지더군요. 제 경험상 외국인을 처음 한정식집에 데려가면 이 반찬 가짓수에서 한 번, 맛에서 또 한 번 놀랍니다. 한정식을 먹고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는 3km도 안되는 거리에 있어서 차로 5분 정도만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돗자리 위 김밥이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전망대에서 단풍을 실컷 구경한 뒤, 우리 일행은 하산 길 자연관찰로(自然觀察路)를 걸었습니다. 자연관찰로란 국립공원 내 생태 탐방을 위해 조성된 저경사 탐방로로, 내장산의 것은 국립공원 최초로 만들어진 코스입니다. 원적계곡을 따라 걸으며 굴거리나무 군락과 비자나무 군락을 지나 내장사까지 이어지는 800m 남짓한 길은 체력이 부담스러운 분들도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숲속을 걷다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아내가 미리 싸온 김밥을 꺼냈는데, 불고기김밥, 참치마요김밥, 돈가스 김밥 세 종류였습니다. 숲속 돗자리 위에서 불고기가 들어간 김밥 한 조각을 먹을 때에는 김밥의 고기향과 숲속에서 불어오는 풀냄새가 섞여서 마치 소풍을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 친구는 김밥 하나를 맛보더니 "이걸 김밥 안에 다 넣을 생각을 했다니 대단하다"고 진심으로 놀라워했습니다. 일본에도 김밥과 비슷한 음식이 있지만 단무지, 시금치, 우엉 조합이 기본이라, 불고기나 돈가스가 들어간 김밥은 완전히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한국에는 김밥전문점이 골목마다 있어서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다는 말에도 신기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외국인 친구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부터 내장산 단풍보다 이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분위기, 상다리 부러지는 지방 한정식, 그리고 숲속 돗자리에서 먹는 김밥. 이런 것들이 외국 친구 눈에는 오히려 더 신기하고 특별하게 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고속도로와 휴게소 경험: 서울에서 정읍까지 차로 이동하며 한국 고속도로 인프라와 휴게소 간편식 문화를 직접 보여줬습니다.
- 전라도 한정식: 반찬 수십 가지가 나오는 한정식 상차림을 통해 한국 밥상 문화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했습니다.
- 내장산케이블카와 자연관찰로: 체력 부담 없이 단풍 절경을 즐길 수 있는 동선으로 안내했습니다.
- 돗자리 위 김밥: 한국인에게 흔한 일상이 외국인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단풍 명산의 매출 증가율(출처: KB국민카드 빅데이터 분석)
- 내장산 매출 증가율 235% (압도적 1위)
- 주왕산 : 116%
- 설악산 : 47%
- 지리산 : 45%
내장산을 처음 계획하는 분이라면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서 시작해 자연관찰로를 걸어 내려오는 동선이 가장 무리 없고 알찹니다. 거기에 정읍 시내 한정식 한 상을 더하면 하루가 꽉 찹니다. 가을 단풍 여행지를 고민 중이시라면, 설악산 대신 한 번쯤 정읍행 고속도로를 달려보시길 권합니다. 일본친구는 한국여행을 자주 하지만 이렇게 다채롭게 음식과 볼거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다음에 또 올 때는 좀 더 색다른 볼거리와 먹거리를 구경시켜 달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 참고: https://www.tourtoctoc.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