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십원빵 열풍 (해외, 디자인 논란, 첨성대)
경주 황리단길에서 처음 십원빵을 봤을 때, 솔직히 '동전 모양 빵이라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 입 베어 물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카스텔라 같은 부드러운 빵 속에서 쭉 늘어나는 모짜렐라 치즈를 보면서, 왜 이 빵이 일본과 베트남까지 수출되는지 바로 이해가 갔습니다. 십원 동전 속 다보탑 문양까지 섬세하게 새겨진 이 빵은 단순한 간식을 넘어, 경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관광상품이 되었습니다.
십원빵, 어떻게 해외까지 열풍을 일으켰을까?
경주 십원빵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건 2020년대 초반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경주가 국내 여행지로 재조명 받으면서, SNS에는 십원빵 인증샷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1966년 발행된 십원 동전을 그대로 본뜬 이 빵은, 크기도 상당해서 두 사람이 나눠 먹기 딱 좋았습니다.
제가 경주에서 십원빵을 처음 맛봤을 때가 기억납니다. 와이프와 전기자전거를 타고 황리단길을 지나는데, 한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군요. 호기심에 저희도 대기 줄에 섰고, 갓 구운 십원빵을 받아들었을 때 그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카스테라 반죽(castella batter)으로 만든 빵은 입안에서 스르르 녹았고, 그 안에 가득 찬 모짜렐라 치즈는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길게 늘어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십원빵을 자국 화폐인 10엔 동전 모양으로 재해석 했습니다. 일본의 유행어·신조어 선정위원회가 2023년 핫 키워드 후보로 '10엔빵'을 올릴 정도로 인기가 대단합니다. 오사카 도톤보리와 도쿄 시부야 같은 대도시 중심가에는 10엔빵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일본 현지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경주의 10원빵이 원조"라고 명확히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기본 모짜렐라 치즈 외에도 단팥, 녹차 크림, 슈크림 등 다양한 속 재료를 활용해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베트남에서도 십원빵 열풍은 뜨겁습니다. 베트남 젊은이들은 쫄깃한 치즈가 가득한 십원빵을 맛보기 위해 2~3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합니다. SNS에 올라온 십원빵 먹방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하노이와 호치민의 유명 쇼핑몰뿐 아니라 도심 곳곳에 십원빵 노점이 생겨났습니다. K-푸드 열풍이 김치나 떡볶이를 넘어, 이제는 길거리 간식 영역까지 확장된 셈입니다.
| 일본 | 평균 500엔(약 4,500원)에 판매되며, 단팥·녹차크림 등 현지화 메뉴 개발 |
| 베트남 | 도심 쇼핑몰과 노점에서 판매, 2~3시간 대기 행렬 발생 |
| 한국 | 경주 원조 외 서울 홍대 등 전국 주요 관광지로 확산 |
한국은행과의 디자인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십원빵의 인기가 높아지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한국은행이 화폐 도안 무단 사용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영리 목적으로 화폐 도안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위변조 심리 조장과 화폐의 품위 저하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합니다.
저작권법(Copyright Act)상 화폐 도안은 국가가 관리하는 지식 재산으로 분류됩니다. 쉽게 말해, 십원 동전에 새겨진 다보탑 문양과 전체 디자인은 함부로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국은행은 과거에도 화폐 도안을 무단 사용한 방석, 속옷, 유흥업소 전단 등에 대해 기준을 안내하고 시정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202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십원빵 문제로 뭇매를 맞았습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책상머리 행정",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권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은행 측은 "법적으로 소상공인에게 피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니라, 화폐 도안을 함부로 써도 된다는 인식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했습니다.
십원빵 업체 사장은 "요즘 아이들은 경주에 다보탑이 있는 것도 잘 모른다. 십원빵을 통해 화폐에도 친숙해지고 경주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한국은행 생각은 다른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결국 업체들은 디자인 변경 협의에 들어갔고, 한국은행은 법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출처: 한국은행).
개인적으로는 이 논란이 좀 아쉽습니다. 물론 법은 법이지만, 십원빵이 경주 관광과 문화재 홍보에 기여한 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규제와 진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이번 사례가 좋은 논의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첨성대와 십원빵 너머의 감동
와이프와 저는 경주를 여행하면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유적지가 눈에 들어왔고, 수학여행 때 본 풍경이 성인이 된 지금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숙소에 차를 세워두고 전기자전거를 빌려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 남쪽 지방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전기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정말 상쾌했습니다.
경주를 여행할 때 박물관 방문은 필수입니다. 저희 부부는 여행지마다 박물관을 꼭 들르는 편인데, 경주에서는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천년고도(千年古都)'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더군요.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도심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십원빵을 먹으면서 도착한 저녁 시간대의 첨성대는 낮과는 전혀 다른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APEC 정상회의 때 경주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행사가 지금은 상시 상영되고 있습니다. 프로젝션 매핑은 건축물 외벽을 스크린처럼 활용해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첨성대 전체가 거대한 스크린이 되어서 조선시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사신도가 펼쳐졌습니다. 한번 보게 되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첨성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첨성대에 비춰진 영상과 함께 음악이 나오는데 정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낮에 본 첨성대와 밤에 불빛을 받은 첨성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가 현대 기술과 만나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관람료도 무료여서 경주에 온 보람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와이프는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다니던 순간을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꼽았습니다.
문화재는 지금 우리가 보고 즐기는 것이지만, 동시에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십원빵 속 다보탑 문양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우리 동전 속에도 문화재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빵 하나가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담은 매개체로서 십원빵이 더 오래 사랑 받았으면 합니다.
십원빵은 경주 여행의 시작점 이었습니다. 그 빵 하나가 저희 부부를 황리단길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만난 경주의 매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여러분도 경주를 방문한다면 십원빵 하나 들고 자전거를 타보시길 권합니다. 빵 속 치즈처럼 경주의 매력도 길게 늘어날 겁니다.
--- 참고: https://www.tourtoctoc.com/news/articleView.html?idxno=3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