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온천 폐업 (마지막 선물, 연쇄 폐업, 자연휴양림)

목욕바가지 굿즈

온천 한번 즐기러 가는데 가족 전체가 들썩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믿으시나요? 저는 초등학교 시절 유성온천 가기 전날 설레서 잠을 못 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109년 역사를 자랑하던 유성호텔이 2024년 3월 문을 닫았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온천 이용객이 2019년 6,382만 명에서 2021년 3,436만 명으로 급감하면서(출처: 행정안전부) 온천관광 산업 전체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109년 역사의 유성호텔 폐업 전 마지막 선물

1915년 문을 연 유성호텔은 대전을 대표하는 온천 숙박시설이었습니다. 190개 객실과 연회장, 온천탕, 수영장을 갖춘 이곳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종필 전 총리 등 역대 정부 고위직이 대전을 방문할 때마다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 대전 선수촌, 1988년 서울올림픽 대전 선수촌으로 지정되며 국제 행사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70~80년대에는 신혼 여행지로 각광받았습니다. 1994년 유성온천이 국내 첫 '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한 해 유성호텔을 찾는 관광객이 1,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약 252만 명이던 유성 온천지구 이용객은 2021년 약 93만 명으로 3분의 1 가까이 줄었습니다. 호텔 객실 이용률도 2019년 66%에서 2020년 47.2%, 2021년 54.7%로 하락했습니다.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유성호텔은 결국 2024년 3월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호텔 건물은 철거된 뒤 주상복합이나 고급 호텔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유성호텔 관계자는 "5성급 호텔을 신축한다는 소문이 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된 게 없다"며 "유성호텔의 역사성을 생각하면 호텔 영업을 지속하는 게 투자자나 지역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유성온천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방문을 했었습니다. 숙박 예약을 하고 결제하니 추억이 깃든 목욕 바가지와 초코파이를 선물로 주더군요. 초코파이는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항상 사 주셨었던 추억이 있는 먹거리입니다. 아버지는 초코파이와 우유도 항상 같이 사주셨습니다. 

유성호텔 측은 영업 종료 시점까지 숙박객들에게 이 목욕 바가지를 굿즈로 제공했습니다. 목욕 바가지는 온천욕 문화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쉽게 말해 과거 온천탕에서 물을 떠서 몸을 씻거나 사우나 돌에 물을 부을 때 쓰던 도구였습니다. 온천욕 후 먹을 수 있도록 바나나우유(뚱바)와 초코파이도 함께 비치했습니다. 지금 우리집 화장실에는 그때 선물로 받은 목욕 바가지가 놓여 있습니다. 화장실 갈 때마다 그때 선물로 받는 바가지를 보면서 유성온천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가 된 셈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굿즈는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이용자는 "오래된 호텔이지만 잘 관리되고 있어 객실도 쾌적하다"며 "특히 객실에도 온천수가 나오는 게 큰 장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대온천탕은 사람이 많아 불편할 수 있지만, 저녁에 목욕탕을 이용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객실 욕조에서 온천수로 목욕하는 방식을 추천했습니다.

전국 온천관광 특구의 연쇄 폐업

유성온천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 온천관광 특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유성온천지구 인근의 리베라호텔과 아드리아호텔도 2018년 경영 악화를 이유로 폐업했습니다. 1999년 개장한 구례군 지리산 온천랜드는 2000년대 초반 연간 180만 명이 넘는 이용객이 몰렸지만 코로나19 이후 연간 20만 명 밑으로 급감하며 2020년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습니다.

경남 창녕군의 부곡온천지구 최대 규모 시설인 '부곡하와이'는 2017년 이용객 감소로 폐업했습니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온천도 평균 객실 가동률이 10%까지 떨어지며 2021년 8월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온천 수는 2019년 458개에서 2022년 441개로 줄었습니다.

온천관광 쇠락의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설 노후화: 대부분의 온천 숙박시설이 1970~80년대 지어져 현대적 감각과 거리가 멀다.
  2. 접근성 저하: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고 주차 공간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3. 관광 트렌드 변화: 단순 온천욕보다 다양한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을 선호하는 추세다.
  4. 해외여행 보편화: 저렴한 항공권과 자유로운 출입국으로 일본 온천이나 동남아 리조트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한국온천협회 관계자는 "국내 온천은 개발할 만큼 해서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시설이 낡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온천 위주로 이용객이 감소하며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숫자로 보는 국내 온천 관광의 현주소

  • 이용객 급감: 6,382만 명(2019년) → 3,436만 명(2021년)
  • 유성온천지구: 연간 1,000만 명(90년대) → 93만 명(2021년)
  • 온천 시설 수: 458개(2019년) → 441개(2022년)
  • 전국적 연쇄 폐업: 부곡하와이(2017년), 수안보온천 일부(2021년), 유성호텔(2024년)

대전 장태산 자연휴양림, 온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저희 부부는 유성온천을 마치고 대전의 또 다른 매력을 찾아 장태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했습니다. 대전이라고 하면 대도시만 떠올렸는데 이런 자연휴양림이 있다는 게 반가웠습니다. 입구에서부터 길게 뻗은 전나무 숲 사이를 걸어갈때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은 성분들과 나무들의 냄새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숙소로 오는길에 다이소에서 나무향기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방향제를 하나 샀는데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에는 숲속 어드벤처 스카이워크가 있는데 숲속을 빙글빙글 돌며 둘러볼 수 있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입장료가 무료라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도 무료로 운영되어 주차 요금 걱정 없이 편하게 차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장태산에서 숲속 체험을 마치고 유성온천 근처에서 삼겹살을 먹었는데 사장님께서 유성온천이 없어져서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설 좋은 호텔들이 워낙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예전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고 계셨고, 저희가 갔을 때도 손님은 저희밖에 없었습니다.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대전이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라서 대전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우리 부부가 사이좋게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서비스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셔서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온천관광의 쇠락이 지역 상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온천관광 활성화를 위해 '젊은층 유입'이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이준재 한남대 컨벤션호텔경영학과 교수는 "테마가 있는 레저시설과 첨단 시설을 갖춘 공간 등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온천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성구는 260억 원을 투입해 온천 문화체험관과 온천 관광코스를 조성하는 관광거점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성호텔도 2028년 관광호텔로 재개장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도 하루빨리 유성호텔이 재오픈 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도 유성온천은 어릴적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109년 역사를 간직한 유성온천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tourtoctoc.com/news/articleView.html?idxno=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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